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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21세기 미술의 전망과 과제

by 엘리네 202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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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거창한 주제의 원고를 의뢰받고 난감했던 것은 필자가 지닌 미래를 내다보는 함량 미달의 수준도 문제이거니와 한 시대를 특징짓는 예술의 형태는 '저절로 그렇게 된'것이 아닌, 개별 주체의 의지와 실천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볼 때 한 개인이 어떤 전망을 한다는 것은 지극히 무례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응했던 것은 전망은 힘들어도 오늘의 미술이 지난 위상과 지점을 고찰해보는 가운데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또 다른 과제를 제시할 수 있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우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안타깝게도 미술이라는 용어 자체가 향후 자취를 감추게/감추어야 할/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막연히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미술이라는 용어가 19세기 서구에 있어서 어떠한 외부적 기준에 의해서도 재단될 수 없는 그 자체의 영역과 원리를 존중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인 순수예술, 즉 Fine Art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직수입되면서 아름다움을 다루는 기술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술은 우리나라에 정착되면서 재료나 표현 방법, 형식 등을 기준으로 동양화, 서양화, 조소, 디자인 등의 엄격한 영역으로 구분 지으며 작가 활동의 자기 안주를 부추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Fine Art가 원산지에서마저도 아방가르드적 외양을 빌린 '순수성'에 대한 강박적인 콤플렉스로 인하여 종국에는 그 자신의 물리적 실체 외에는 아무런 시대적 연관을 가질 수 없는 고립을 자초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른바 미술에 있어서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이러한 본질 추구적인 모더니즘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 개별적 입장과 맥락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우리의 일상을 뒤덮고 있는 제반 시각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해석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의 수단으로는 더 이상 미술, 즉 Fine Art적 관점이 아닌 문화적, 기호학적 분석 들을 요한다. 즉 기존의 순수 미술작품을 넘어서 다양하면서도 이질적인 주체-소수성이 아닌, 생성적인 관계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이루어져야 하며, 우리들 일상을 지배하는 TV나 영화, 신문, 잡지, 인터넷, 패선, 거리의 포스터와 네온 간판 등 이른바 대중문화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모든 이미지들과 동시 공간의 구성 및 작동방식이 우리의 삶과 신체적 감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 이면적 성격을 분석해내고 또 다른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미술을 시각문화라는 용어로 대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입장은 기존의 미술이 지닌 전문가 위주의 제한된 표현/활동 영역을 넘어서서 창작/활동 주체의 성격과 역할 및 위상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즉 이제는 단순히 그림 그리는 화가로서 표현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성향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복합적 감각을 수단으로 또 다른 교류와 소통을 이루어내는 중개자, 매개자, 역학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현재의 동양화가, 서양화가, 조각가 등과 같이 스스로를 특정 장르 속에 가두어 제한된 역할만을 담당하겠다는 태도로는 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창작/활동의 근거지를 기존의 제도화된 공간만이 아닌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소통루트로 확대시켜야 한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디지털이라고 하는 기술의 혁명적 발달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전과 같이 자기표현과 서로 간의 접촉이 제한된 공간과 수단에 의해 이루어지던 상황 속에서는 갤러리나 미술관 등에 의존한 전시가 한꺼번에 다수를 상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변이 있었으나, 요즘과 같이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사소통이 굴절 없이 가능한 첨단 통신 및 복제 수단, 이른바 휴대폰이나 인터넷 등이 실용화되면서 물리적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실시간의 교류가 가능해진 상황에서는 과거와 같은 방식은 부분화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디지털 매체가 촉발시킨 새로운 문화환경은 이제 예술가와 대중, 창작자와 수용자라는 이분법적 구분을 통한 위계관계를 허용하지 않는데, 디지털의 쌍방향성과 하이퍼텍스트가 작동시키는 특성들은 소수가 전유하는 폐쇄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는 참여민주주의적 가치와 상호 호환되는 것처럼 인식될 정도로 이제는 개별 주체마다 달리 드러나는 밀도의 차이와 정도만이 있을 뿐이지 표현 주체와 감상 주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이를 바탕으로 예술에 있어서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한 논의는 더욱 가열하게 진행되리라 보인다. 예술이 작가 개인의 입지나 이익의 수단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도태와 환경에 대한 개입을 시도함을 서 바람직한 공동체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의 배경에는 화가라는 창작 주체가 자신도 시대적 산물이며, 나아가서는 나와 남은 엄격히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가 그물망처럼 얽혀있고 겹쳐져 있는 더불어 사는 살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반 창작과 활동에 있어서 결과보다는 과정이 전달보다는 참여와 나눔이 중요한 개념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들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한 시대가 만들어놓은 영역과 제도, 장르에 편입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는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한 성찰을 기반으로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와 대상을 늘 다른 방식을 보고자 하는 태도를 길러야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주어진 예술적 형식과 활동 방식에 있어서 그 어느 하나에 대한 선택이 아닌 모든 것을 자신의 작업과 활동의 장으로 포함시키려는 욕심 아닌 욕심이 필요하다.

 

예술에 있어서의 실험성과 도전정신은 비단 작품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여 자기의 인식을 새롭게 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며, 그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나갈 때 보다 넓어진 스케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미술은 그러한 주체들의 개별적 노력들이 모여 또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드러날 것이며 그 속에 자신을 포함시킬지 않을지는 각자가 선택하기 나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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