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다녀온 전시회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아무래도 서양미술 400년 전과 성곡 미술관에서 있었던 작은 사진전, 그리고 대영박물관 한국적이다. 그중에서 가장 전시가 잘 되어있고 만족스러웠던 전시회는 대영박물관 한국전인데, 서양 미술 400년 전처럼 배열이 엉망이어서 실망스럽지도 않았고 조금은 이른 시각에 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도 많지 않아 관람하기가 수월했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를 대영박물관이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개최했던 전시회였으며 한국에서도 세계 삼대 박물관 중 하나인 대영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전시하였다는 의미에서 그 가치가 큰 것이었는데, 지역적으로 5대양 6대주의 자료들이 골고루 포함되어있었고, 배치 또한 고대부터 근대까지 시간 순으로 되어있어 미술사의 흐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전시회 관람 전에 약간의 사전조사나 전시를 안내하는 작은 책자를 참고하면서 관람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 입구에서는 사진이나 관련 자료들로 초기 대영박물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데, 마르크스 레닌도 대영박물관을 이용하였다는 자료가 흥미로웠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고대 유물에는 상형문자와 그림이 새겨진 그림이 발목 위에 놓여있는 이 집의 성인 미라와 이라크의 여왕의 수급 등이 기억에 남는다. 고대 유물에는 하나같이 사후세계에 대한 강이한 믿음이 드러나 있었는데, 당시 고대인들의 삶과 문화적인 면까지 엿 불 수 있는 계기였다. 그리고 원판은 아니었지만, 고대 이집트 연구의 혁명적 사건인 로제타스톤을 볼 수 있어 더욱 유익했다. 그리고 꽤 정교하고 섬세하였으며 장식적인 면에서도 한몫을 해 주고 있었다.
그다음에 이어진 그리스-로마 관은 아마 대영박물관 전시를 보러 온 관람객들 대부분이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인간의 이상적인 육체미를 중심으로 사실적으로 또는 미화하여 표현했던 그 시대의 훌륭한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거의 조각 작품들이었다. 중앙의 대리석상 몇 개가 놓여있고 양쪽 사이드에 유물들이 놓여있는 배치였는데, 역시 시선을 가장 끌었던 것은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대리석상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디오니소스를 정말 좋아한다. 이미 오래전 디오니소스의 전기문을 물론 실제 인물의 전기문과는 틀린 것이었지만, 작가 자신이 전기라고 한 디오니소스의 일대기를 읽었으며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매력적인 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좋아했기 때문에 내 눈앞에 디오니소스의 석상 중 하나가 서있다는 것 자체가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었다. 벽에 세우기 위해 제작되어서 그런지 뒤쪽은 심심했지만 정말 흥겨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안토니스 흉상은 그 작품보다 소개글이 눈을 끌었으며, 왼발을 앞으로 하고 있어 동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토르소도 충분한 관람 거리였다. 또한 계속 감탄했던 펜던트와 반지, 동전이나 귀걸이 등과 같이 아주 작은, 그러나 정말 섬세한 전시품들도 눈을 즐겁게 해 주었는데, 옆쪽에 화대 사진이 하나 더 있었으면 했다.
아프리카 유물 역시 재미있었다. 뭔가 색다른 맛이 있었다. 흑인의 기념상 또는 전승 두상이 강렬한 느낌을 주었고, 표범 사냥단 등은 정교하면서도 정적이고 입체감이 풍부했다. 역시 이 유물들에도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표출되어있었고, 또 하나의 특징은 음악을 중시하였던 것 같은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여기까지 돌면 그다음부터는 왠지 빠르게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데, 렘브란트와 자화상이나 보쉬의 공격하는 코끼리, 투우, 체스 말 등이 전시되어있었다. 특히 보쉬의 작품에는 동적이면서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드러나 있었고 선 자체가 특이했으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한 묘사력이 훌륭했다.
아시아관에서는 난생처음 실제로 금채라는 것을 보았는데 정말 신기했다. 이슬람 화원을 배경으로 한 어느 책에서, 금채는 금을 물에 개어서 정교하게 칠한다는 글귀를 본 적이 있는데 상상으로는 충분치 않았으나 실제로 보니 꼭 한번 해보고 싶을 만큼 아름다웠다. 아시아에서 본 서양의 모습은 색감이 아름다웠으며 팔이 12개인 인도의 여신 춘다도 눈길을 충분히 끌만했다.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서있는 여신도 보았는데, 이들 작품은 자세하진 않아도 표현력이 풍부하고 좋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저런 작품들을 흥미 있게 관란 하면서 에도시대 일본의 작품 호랑이를 보았는데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설명하길, 얼굴은 살쾡이와 고양이, 호랑이를 합쳐 상상으로 그려내었고 눈동자가 녹색인 점, 그리고 털 하나하나를 붓으로 다 그려낸 점에서 정교함을 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듣기 전에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나서는 오랫동안 그 앞에 서서 관람했던 기억이 난다.
거의 전시의 막바지에서 나는 고려의 청자 철화 국당초 문 매병을 보고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세계 미술사에는 외국의 작품들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훌륭한 작품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자는 그 아름다운 색감과 장식성에서 외국의 여느 작품만큼 눈길을 줄만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작품은 다른 나라의 작품보다 비중이 적어 아쉬운 마음도 든다.
아시아관에는 다른 관에서 보았던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보다는 신앙 그 자체에 많이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아시아관을 마지막으로 전시회에서 나왔을 때는 비싼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뿌듯함이 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세계 미술사에 대한 글과 사진만을 보다 이렇게 실제 적로 보고 느끼니 눈을 넓힌 것 같다는 생각도 된다.
옛사람들의 미술작품에서 당시의 문화와 삶을 알 수 있다는 것은 미술 자체가 생활이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또한 모든 생황에서 미술과 접하며 살고 있다. 사소하게 지나치는 것들 모두가 미술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쓰는 책상, 문, 도로, 건물 등 미술은 그 범위가 광대하기 크기 때문에 작은 틀 안에만 가둬두려 하는 것은 그만큼 예술을 보는 눈이 작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의 생각 그대로 훗날에도 예술을 내 생활로 만들고 싶다. 지금까지의 예술가가 그러했듯이
'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의 미래에 대한 생각 (0) | 2021.11.09 |
---|---|
21세기 청소년 음악의 전망 (0) | 2021.11.09 |
21세기 미술의 전망과 과제 (0) | 2021.11.08 |
21세기 영화의 전망과 과제 (0) | 2021.11.08 |
카피라이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0) | 2021.11.08 |
댓글